8km 거리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각오로 헤엄쳐 귀순

정부로부터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 인정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올해 89세

귀순용사 김관섭 님이 1974년 8월을 생각하며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약 한 시간 가량 담소를 나눴다.영상좔영하고 있는 반월방송사의 취재용 영상카메라.
귀순용사 김관섭 님이 1974년 8월을 생각하며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약 한 시간 가량 담소를 나눴다.영상좔영하고 있는 반월방송사의 취재용 영상카메라.

올해로 89세를 맞이한 귀순용사 김관섭 님은 1974년 8월 25일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을 북녘에 뒤로 하고 남쪽으로 죽음을 각오한 귀순을 펼쳤기 때문이다. 김관섭 님은 1996년 8월 23일 반월신문과 인터뷰를 가졌었다.

반월신문 반월방송 취재진들은 지난 27일 귀순용사 김관섭 님을 28년 만에 다시 초대해 귀순했던 날의 기억들을 영상에 담았다. 이 날 오전 10시에 김관섭 님은 반월신문사를 방문하여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취재진들과 담소를 나누며 잊지 못 할 기억 속 얘기를 전했다.

김관섭 님은 1974년 8월 25일 야밤에 물살이 센 서해안을 이용해 조수를 타고 약 8시간 동안 8km 거리를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의 각오로 헤엄쳐 1974년 8월 26일 일출이 밝을 때 쯤 강화군 양사면 교산2리 해안지역에 귀순하는 데 성공했다.

김관섭 님은 “현재는 귀순한 지역이 철조망으로 삼엄한 경비가 되어있지만, 귀순한 시기에는 철조망도 없었고 초소도 없어 남측에 쉽게 발을 디딜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관섭 귀순용사님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군 고덕면 덕암리 농어촌 마을이다.1935년 9월 31일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김관섭 님의 부모님은 조선노동당 당원으로서 김일성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고 했다.

그 때문인지 김관섭 님은 1954년 8월에 인민군에 입대 후 평양시 조선인민경비대 군관학교를 3년 간 다녀 최우등으로 졸업 후 개성지구 개풍군 해평리 사회안전부 인민경비대에 북한군 중대장으로 임명되어 8년 여 간 군생활을 지냈다.

북파공작원과 월남 도주자를 체포 소멸하는 업무를 받고 당에 충성하면서 남조선 해방만 외치던 북한군 중대장이었다.

“최전방에서 근무하면서 대북심리전 방송과 남한 방송을 수시로 청취하고 장마철에 강물이 불어나 남쪽에서 올라와 떠돌아 다니는 생활 필수품을 보고 남한이 북한보다 더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면서 평생을 억눌려 사는 것보다 남한으로 오겠다는 각오가 8km 거리를 헤엄치게 할 수 있던 동기가 됐다.”고 김관섭 님은 밝혔다.

1974년 8월 26일 강화도 해안가에 도착한 김관섭 님은 서울 신길동 대성공사에서 하룻밤 고문을 받고, 남산 중앙정보부로 옮겨져 45일 간 심한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대성공사로 이송돼 고문조사를 받았다. 대성공사 독방에서 사흘을 보내고, 억겁의 시간을 보내다 1974년 11월에 간첩이라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의 사명은 자유수호다”
귀순용사 김관섭, 국가기록원에 기록문화유산으로 보존 활용

귀순용사 김관섭 님이 취재진들이 타준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귀순했을 당시의 기억들과 안산시에서 행한 봉사활동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답변을 하고 있다.

김관섭 님은 인민군 중대장이라는 직책에 걸맞게 북한 고급 군사정보를 제공해 국가안보에 기여했다. 신포시 마양도 핵잠수함 공장 첩보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방상의 주요한 군사정보 129건을 제공했다. 월남 귀순자 정착등급 1급을 받고 정착금 100만 원과 중앙정보부장 격려금 30만 원도 받았다. 또한, 대한민국 사회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귀순용사 김관섭 님은 30년 동안 국민 안보교육을 진행하면서 한국자유총연맹 교수로 1998년 12월 5일 학생들에게 안보교육을 하기 위해 안산 단원구 선부중학교 교육장으로 가던 중 횡단보도로 돌진해 온 차량과의 교통사고로 오른쪽 무릎이 절단돼 지체장애인이 되면서까지 국가안보에 기여했다.

김관섭 님이 사회발전에 기여한 업적은 이 뿐만이 아니다. 1990년 7월 24일 안산시 단원구 와동 일대 집중 폭우로 산사태 위험이 발생했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산 밑 6가구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켜 많은 인명을 구조한 사실이 언론에 모범사례로 소개됐고 안산 시민들로부터 칭송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국가에서는 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국민훈장인 석류장을 수상한 바도 있다.

김관섭 귀순용사는 30년 동안 국민 안보교육에 최선을 다했다. ‘나의 사명은 자유수호다’를 외치면서 전국을 순회 강의한 지도 30년이다. 30년 강의 횟수는 4,200여회, 교육인원은 150만명에 이른다. 김관섭 님은 현재도 통일안보강사로 활발히 활동중에 있으며, 지난해 12월 경 안산시평통협의회 초대로 강의를 진행했다고 언급했다.

1996년 12월 6일 언론에서 봉사대상을 수상한 것도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으로 지역 사회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함으로써 밝고 정의로운 사회건설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봉사대상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국민들로부터 칭송을 받아 귀순용사 김관섭 님이 대한민국에서 헌신한 업적이 대전에 자리하고 있는 국가기록원에 기록문화 유산으로 보존 활용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국민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관섭 귀순용사는 취재진들에게 “이제는 소산으로 기울어지는 인생인데, 이렇게 반월신문 반월방송에서 초정해주고 인터뷰까지 청해줘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해당 기사는 오는 3월 1일 반월신문·반월방송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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